읽은 책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예똘
2012. 1. 14. 19:34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랜덤하우스
2010년 12월 10일 1판 2쇄 349쪽

이 글의 작가인 리처드 풀햄은
피노키오의 제페트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영화)의 탐험가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활짝 웃으면 "KFC(치킨집)"의 모델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34번가의 기적(영화)의 크리스 크링글(리터드 아텐버로우) 같기도 한...(맞네. 누굴 많이 닮았다 했더니 크리스 크링글이네!! ㅋㅋ)
맘 좋고 지적이고 푸근한 할아버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겐 그저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나는 어디서 이런 걸 배웠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의 제목이 상징적인 것이리라.
모든 배움의 장을 유치원으로 상징하였으리라.. 라는 짐작을 하긴 하나, 당연히 세상 모든 사람들은 유치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리라고 짐작(혹은 확신)하고 있는 지은이에게 당연히 선진국의 지적 경제적 부루주아의 한계를 보았다.
처음에는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리는 듯했고 삶과 죽음과 같이 인간에게 당연한 운명을 무겁지 않게 받아들이는 유머가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 나는 가끔 사람들이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잘 모른다는 사실에 놀란다. 목사로 일하던 시절, 사람들이 찾아와 이런 말을 하면 늘 당황스러웠다. "방금 전 병원에 다녀왔는데, 의사가 저더러 시한부 인생이랍니다."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뭐라고요? 그걸 몰랐습니까? 나이도 적지 않은데 그 말을 들으려고 의사한테 돈까지 냈단 말입니까? 유치원에서 작은 컵에 솜과 물과 씨앗을 담아놓고 기다리던 때에 당신은 어디 있었습니까? 컵 속에 생명이 태어난 것은 기억합니까? 뿌리가 나오고 새싹이 돋았지요.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식물은 죽었어요. 죽었단 말입니다. 삶은 짧습니다. 그날 자고 있었나요? 아니면 아파서 학교 안 가고 집에 있었나요?"...
지금 내 느낌은...
헐~!!!!!!!!
처음 읽을 때는 '그래, 사람은 다 죽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지. 수선스럽게 벌벌 떨 이유가 없지.'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니, 내가 죽는다는데, 그렇다면 세상이 끝나는데, 가족과 더 이상 못보는데, 가족은 둘째치고 아무렇지 않게 이어온 내 일상이 정지된다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을텐데, 수선을 떨지 않고 울지 않고 배길 사람은 몇명 없을 것 같다. 모두가 맞이하는 운명이지만 어쩌다 지금(!) 그것을 맞이하는 내 절망을 공감해주고 모든 익숙한 것과 치르게 되는 이별에 대한 서운함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경악스러울 것이다. 이 글의 많은 부분은 이렇게 심각한 주제를 사소한 유머로 날려 버린다. 인생을 대할 때 이런 쿨~한 태도도 가끔은 필요하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쿨하지 않다(적어도 내게는...). 지은이의 말대로 전체적인 그림안에 삶과 죽음을 넣더라도 삶은 때로 버겁고 죽음은 당연히 경악스러운 것이다. 복된 삶과 복된 기도와 그로인해 받아들이게 된 복된 죽음은 당연히 가볍고 유머러스하겠지만 의사에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 것은 결코 복되지 않다. 그 순간만은.
읽어가면서, 이 작가는 삶을 참 풍족하게 살았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글에서 바닥을 경험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물론 강력한 내공으로 그걸 전혀 눈치못채게 위장 할수도 있겠지만(뭐 굳이 그랬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세일즈맨, 카우보이, 로데오 선수, 화가, 조각가, 음악가, 목사, 선불교 수도사, 카운슬러, 바텐더 등 다양한 경험을 아주 얕게 체험한 냄새가 난다. 바꿔 말하면 한 고비를 넘기고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피땀어린 고뇌를 경험하지는 않은 것 같다. 넓기는 하나 깊지가 않다. 재미있기는 하나 가볍다. 인생이 행복한 일 투성이고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렇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그래서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는 법이고(p311 옆집 남자, 워싱턴), 그러므로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존경할만한 인물이 되고(p333 동네 이발사) 천사로 소개(p48 엘리)할 수 있을만큼 선하다.
대책없이 천진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크레파스를 폭탄으로 만들어 뿌리자-라든지, 세제의 온갖 성분을 사랑한다든지 지팡이 이야기나 시민권 갱신 등의 이야기 등. 다 읽어가면서 피로했다. 내게는 이런 것을 음미할 여유가 없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나의 여유없음에 절망하다가 이 글이 원래 목사로 재직할 때 설교 내용임을 알고 다시 희망을 회복했다.
설교처럼 공중에 뿌리고 말 내용을 글로 옮긴 것, 더구나 책으로 묶은 것은 원래 글을 목적으로 쓴 글보다 가볍고 즉흥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
참고로 우리 나라 유치원 아이들은 이런 것을 배우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무엇을 배우든지간에 사실 배우는 것은 -우리 선생님은 엄마에게 꼼짝 못하는구나, 국어와 수확과 영어를 잘 해야하는구나, 아무 말이나 해도 아직 어려서 다 봐주는구나 - 뭐 이 정도이다.
너무 절망적인가?
아님 내 주변 유치원이 절망적인가?
아님 내가 교육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가?
최정인 옮김
랜덤하우스
2010년 12월 10일 1판 2쇄 349쪽
참 예쁜 그림이다. 정말로, 아이들은 잘 때 제일 예쁘다. 자지 않을 때의 아이들이 예쁠 확률은 거의 없다. 물론 만 3세 이상의 아이들. 그림에는 나오지 않는데 이 책의 진짜 표지는 약간 바나나우유 색깔이다. 그래서 더 푸근하고 정감있다.
이 글의 작가인 리처드 풀햄은
피노키오의 제페트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영화)의 탐험가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활짝 웃으면 "KFC(치킨집)"의 모델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34번가의 기적(영화)의 크리스 크링글(리터드 아텐버로우) 같기도 한...(맞네. 누굴 많이 닮았다 했더니 크리스 크링글이네!! ㅋㅋ)
맘 좋고 지적이고 푸근한 할아버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겐 그저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나는 어디서 이런 걸 배웠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의 제목이 상징적인 것이리라.
모든 배움의 장을 유치원으로 상징하였으리라.. 라는 짐작을 하긴 하나, 당연히 세상 모든 사람들은 유치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리라고 짐작(혹은 확신)하고 있는 지은이에게 당연히 선진국의 지적 경제적 부루주아의 한계를 보았다.
처음에는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리는 듯했고 삶과 죽음과 같이 인간에게 당연한 운명을 무겁지 않게 받아들이는 유머가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 나는 가끔 사람들이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잘 모른다는 사실에 놀란다. 목사로 일하던 시절, 사람들이 찾아와 이런 말을 하면 늘 당황스러웠다. "방금 전 병원에 다녀왔는데, 의사가 저더러 시한부 인생이랍니다."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뭐라고요? 그걸 몰랐습니까? 나이도 적지 않은데 그 말을 들으려고 의사한테 돈까지 냈단 말입니까? 유치원에서 작은 컵에 솜과 물과 씨앗을 담아놓고 기다리던 때에 당신은 어디 있었습니까? 컵 속에 생명이 태어난 것은 기억합니까? 뿌리가 나오고 새싹이 돋았지요.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식물은 죽었어요. 죽었단 말입니다. 삶은 짧습니다. 그날 자고 있었나요? 아니면 아파서 학교 안 가고 집에 있었나요?"...
지금 내 느낌은...
헐~!!!!!!!!
처음 읽을 때는 '그래, 사람은 다 죽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지. 수선스럽게 벌벌 떨 이유가 없지.'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니, 내가 죽는다는데, 그렇다면 세상이 끝나는데, 가족과 더 이상 못보는데, 가족은 둘째치고 아무렇지 않게 이어온 내 일상이 정지된다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을텐데, 수선을 떨지 않고 울지 않고 배길 사람은 몇명 없을 것 같다. 모두가 맞이하는 운명이지만 어쩌다 지금(!) 그것을 맞이하는 내 절망을 공감해주고 모든 익숙한 것과 치르게 되는 이별에 대한 서운함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경악스러울 것이다. 이 글의 많은 부분은 이렇게 심각한 주제를 사소한 유머로 날려 버린다. 인생을 대할 때 이런 쿨~한 태도도 가끔은 필요하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쿨하지 않다(적어도 내게는...). 지은이의 말대로 전체적인 그림안에 삶과 죽음을 넣더라도 삶은 때로 버겁고 죽음은 당연히 경악스러운 것이다. 복된 삶과 복된 기도와 그로인해 받아들이게 된 복된 죽음은 당연히 가볍고 유머러스하겠지만 의사에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 것은 결코 복되지 않다. 그 순간만은.
읽어가면서, 이 작가는 삶을 참 풍족하게 살았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글에서 바닥을 경험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물론 강력한 내공으로 그걸 전혀 눈치못채게 위장 할수도 있겠지만(뭐 굳이 그랬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세일즈맨, 카우보이, 로데오 선수, 화가, 조각가, 음악가, 목사, 선불교 수도사, 카운슬러, 바텐더 등 다양한 경험을 아주 얕게 체험한 냄새가 난다. 바꿔 말하면 한 고비를 넘기고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피땀어린 고뇌를 경험하지는 않은 것 같다. 넓기는 하나 깊지가 않다. 재미있기는 하나 가볍다. 인생이 행복한 일 투성이고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렇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그래서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는 법이고(p311 옆집 남자, 워싱턴), 그러므로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존경할만한 인물이 되고(p333 동네 이발사) 천사로 소개(p48 엘리)할 수 있을만큼 선하다.
대책없이 천진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크레파스를 폭탄으로 만들어 뿌리자-라든지, 세제의 온갖 성분을 사랑한다든지 지팡이 이야기나 시민권 갱신 등의 이야기 등. 다 읽어가면서 피로했다. 내게는 이런 것을 음미할 여유가 없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나의 여유없음에 절망하다가 이 글이 원래 목사로 재직할 때 설교 내용임을 알고 다시 희망을 회복했다.
설교처럼 공중에 뿌리고 말 내용을 글로 옮긴 것, 더구나 책으로 묶은 것은 원래 글을 목적으로 쓴 글보다 가볍고 즉흥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
참고로 우리 나라 유치원 아이들은 이런 것을 배우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무엇을 배우든지간에 사실 배우는 것은 -우리 선생님은 엄마에게 꼼짝 못하는구나, 국어와 수확과 영어를 잘 해야하는구나, 아무 말이나 해도 아직 어려서 다 봐주는구나 - 뭐 이 정도이다.
너무 절망적인가?
아님 내 주변 유치원이 절망적인가?
아님 내가 교육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