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엄마를 부탁해
예똘
2009. 11. 14. 11:58
신경숙
초판 26쇄 2009년 5월 16일(초판1쇄 : 2008년 11월 10일)
창작과 비평사
229쪽
어떤 사람은 이책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엄마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효도를 다짐했다고 하기도.
다른 독후감들을 보면 향수를 자극하는 아스라한 글을 쓸 수 있는 마지막 작가라고 했다. 신경숙은.
그럴 것이다.
내 딸이 자라서 글을 쓴다면 이리도 생생한 촌락의 풍경이 나오겠나 싶다. 잠시 스치듯이 살아가는 농촌 마을이 아니라 살아봐야 아는, 그것도 오래도록 살아봐야 아는, 또한 유년 시절에 오랫동안 살아봐야 느끼는 생생한 경험과 느낌들을 이 시대의 아이들은 재생할 길이 없을 듯하다. 나도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자란 탓에 글을 읽으며 감복할 뿐 신경숙이 알고 느낀 비슷한 그리움은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생하게 읽었다. 생명을 묘사할 때는 정말 그것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루 밑에 있는 열여덟 마리의 강아지들이 보드랍고도 따뜻한 그것들이 꼬물거리며 낑낑대고 있는 것이 눈앞에 어른거렸고 자빠지며 꼬꾸라지며 어미를 따라 다니는 노란 병아리들의 아우성소리가 들리는 닷했다. 벅차게 올라오는 푸른 새싹들과 쉴새없이 자라는 푸른 것들, 끊임없이 순환하는 태어남과 자람, 그 자람의 과정에서 나오는 배설물은 다시 자람의 거름이 되는 과정이 경쾌하게 돌아가는 하루의 일상처럼 가깝게 다가왔다.
먹을 것들만 해도 그렇다. 쉼없이 만들어내는 음식들. 아니, 음식들이란 말은 생동감이 적다. 먹을 것들.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찐빵과 삶은 감자와 밥위에 쪄내는 비린 것들과 나물들과 옥수수와 아욱을 넣은 된장과 고소한 겉절이, 남편을 위한 들기름에 구운 김과 맵게 지져낸 갈치조림... 먹을 것들, 먹을 것들, 먹을 것들. 세상에 맛나는 먹을 거리들을 만들어 주는 이와 사주는 이들만큼 점수를 따는 경우가 또 있을까! 먹을 것들을 해대지 않는 엄마를 자녀들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기억할까?
여기 나오는 엄마는 평생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에 헌신했다. 여자로서 해야한다고 믿는 일이 아닌 다른 일에도 힘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집을 수리하고 문짝을 떼어내고 타지의 자식들에게 먹을 거리와 각종 서류들을 공수하는 일까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사람들은 이런 엄마를 공유하는 것일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읽으면서 내내 울어야 한다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나지 않지? 이 엄마는 나의 눈물을 받아 마땅한데.. 라는 심리적인 강요를 받았다. 나의 엄마는, 우리 형제의 엄마는 이 엄마처럼 그리 헌신적이지 않았나보다. 아니, 엄마는 헌신적이었으나, 그리고 엄마는 모든 것이 저희, 즉 자식 때문이었다고 말했으나 목적이 있었다. 자식으로 하여금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목적. 이 책의 엄마는 "나처럼 살게 할수는 없어야. 학교를 보내야겠어." 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너는 무엇무엇이 되어야해."라고 구체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나의 엄마와 차이나는 부분이 이것이다. 나의 엄마는 지속적으로 강요했다. 내가 맏딸이라 나에게 끊임없이 강요했다. 덕분에 나는 지금 먹고 산다. 엄마가 강요한 직업 덕분에 그 직업으로 생계를 꾸리며 고급스런 사고를 할 수 았고 우왁스러운 막노동으로부터 떨어져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엄마에게 감사를 느끼지는 않는다. 스스로 나의 길을 찾을 권리이자 인간으로 태어나 감당해야 하는 의무를 엄마로부터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내 인생을 함부로 내굴리며 살아간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음을 알아챈 순간 느낀 엄마로 행한 분노와 원망은 이제 사그라들었다. 그토록 니인생은 니인생이고 나를 건드리지 말고 살라던 엄마는, 자식들의 용돈이 아니면 쌀 한 톨도 구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매일 열다섯시간 넘도록 과일을 팔고 얻었을 쏠쏠한 수입을 자식들과 공유하기를 거부했던 엄마는 모든 것을 다 털리고(아버지에게) 자식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의 엄마처럼 미안하다를 되뇌며 말이다. 하지만 내 엄마의 "미안하다."의 사과는 깊이없는 일회성의 후회와 회한으로 다가온다. 안스럽지 않다. 그냥 인간으로서의 연민만 남아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이 조각은 엉터리라고 말했다. 33세의 혈기왕성한 청년의 몸무게가, 그것도 시신의 무게가 엄청난데 어찌 여자가 들어 무릎에 올리겠냐는 것이다. 어찌 이 청년이 엄마의 무릎에 올라왔는지 그 과정은 나는 모른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현실이 현실임을 받아들여야하는 엄마의 마음만 생각한다. 후에 있을 영광으로 위로가 될까? 왜 이 고통스러운 여인에게 "너"는 엄마를 부탁하는지 의아했다. 지금 깨닫는다. 고통을 느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다! 자신의 고통의 깊이만큼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여인만 엄마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진짜 고통은 서서히 감각할 수 있다. 두고두고 나중에 천천히 울 수 밖에 없다.
엄마가 옆에 있어서 나는 엄마의 인생에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초판 26쇄 2009년 5월 16일(초판1쇄 : 2008년 11월 10일)
창작과 비평사
229쪽
어떤 사람은 엄마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효도를 다짐했다고 하기도.
다른 독후감들을 보면 향수를 자극하는 아스라한 글을 쓸 수 있는 마지막 작가라고 했다. 신경숙은.
그럴 것이다.
내 딸이 자라서 글을 쓴다면 이리도 생생한 촌락의 풍경이 나오겠나 싶다. 잠시 스치듯이 살아가는 농촌 마을이 아니라 살아봐야 아는, 그것도 오래도록 살아봐야 아는, 또한 유년 시절에 오랫동안 살아봐야 느끼는 생생한 경험과 느낌들을 이 시대의 아이들은 재생할 길이 없을 듯하다. 나도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자란 탓에 글을 읽으며 감복할 뿐 신경숙이 알고 느낀 비슷한 그리움은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생하게 읽었다. 생명을 묘사할 때는 정말 그것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루 밑에 있는 열여덟 마리의 강아지들이 보드랍고도 따뜻한 그것들이 꼬물거리며 낑낑대고 있는 것이 눈앞에 어른거렸고 자빠지며 꼬꾸라지며 어미를 따라 다니는 노란 병아리들의 아우성소리가 들리는 닷했다. 벅차게 올라오는 푸른 새싹들과 쉴새없이 자라는 푸른 것들, 끊임없이 순환하는 태어남과 자람, 그 자람의 과정에서 나오는 배설물은 다시 자람의 거름이 되는 과정이 경쾌하게 돌아가는 하루의 일상처럼 가깝게 다가왔다.
먹을 것들만 해도 그렇다. 쉼없이 만들어내는 음식들. 아니, 음식들이란 말은 생동감이 적다. 먹을 것들.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찐빵과 삶은 감자와 밥위에 쪄내는 비린 것들과 나물들과 옥수수와 아욱을 넣은 된장과 고소한 겉절이, 남편을 위한 들기름에 구운 김과 맵게 지져낸 갈치조림... 먹을 것들, 먹을 것들, 먹을 것들. 세상에 맛나는 먹을 거리들을 만들어 주는 이와 사주는 이들만큼 점수를 따는 경우가 또 있을까! 먹을 것들을 해대지 않는 엄마를 자녀들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기억할까?
여기 나오는 엄마는 평생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에 헌신했다. 여자로서 해야한다고 믿는 일이 아닌 다른 일에도 힘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집을 수리하고 문짝을 떼어내고 타지의 자식들에게 먹을 거리와 각종 서류들을 공수하는 일까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사람들은 이런 엄마를 공유하는 것일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읽으면서 내내 울어야 한다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나지 않지? 이 엄마는 나의 눈물을 받아 마땅한데.. 라는 심리적인 강요를 받았다. 나의 엄마는, 우리 형제의 엄마는 이 엄마처럼 그리 헌신적이지 않았나보다. 아니, 엄마는 헌신적이었으나, 그리고 엄마는 모든 것이 저희, 즉 자식 때문이었다고 말했으나 목적이 있었다. 자식으로 하여금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목적. 이 책의 엄마는 "나처럼 살게 할수는 없어야. 학교를 보내야겠어." 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너는 무엇무엇이 되어야해."라고 구체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나의 엄마와 차이나는 부분이 이것이다. 나의 엄마는 지속적으로 강요했다. 내가 맏딸이라 나에게 끊임없이 강요했다. 덕분에 나는 지금 먹고 산다. 엄마가 강요한 직업 덕분에 그 직업으로 생계를 꾸리며 고급스런 사고를 할 수 았고 우왁스러운 막노동으로부터 떨어져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엄마에게 감사를 느끼지는 않는다. 스스로 나의 길을 찾을 권리이자 인간으로 태어나 감당해야 하는 의무를 엄마로부터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내 인생을 함부로 내굴리며 살아간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음을 알아챈 순간 느낀 엄마로 행한 분노와 원망은 이제 사그라들었다. 그토록 니인생은 니인생이고 나를 건드리지 말고 살라던 엄마는, 자식들의 용돈이 아니면 쌀 한 톨도 구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매일 열다섯시간 넘도록 과일을 팔고 얻었을 쏠쏠한 수입을 자식들과 공유하기를 거부했던 엄마는 모든 것을 다 털리고(아버지에게) 자식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의 엄마처럼 미안하다를 되뇌며 말이다. 하지만 내 엄마의 "미안하다."의 사과는 깊이없는 일회성의 후회와 회한으로 다가온다. 안스럽지 않다. 그냥 인간으로서의 연민만 남아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이 조각은 엉터리라고 말했다. 33세의 혈기왕성한 청년의 몸무게가, 그것도 시신의 무게가 엄청난데 어찌 여자가 들어 무릎에 올리겠냐는 것이다. 어찌 이 청년이 엄마의 무릎에 올라왔는지 그 과정은 나는 모른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현실이 현실임을 받아들여야하는 엄마의 마음만 생각한다. 후에 있을 영광으로 위로가 될까? 왜 이 고통스러운 여인에게 "너"는 엄마를 부탁하는지 의아했다. 지금 깨닫는다. 고통을 느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다! 자신의 고통의 깊이만큼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여인만 엄마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진짜 고통은 서서히 감각할 수 있다. 두고두고 나중에 천천히 울 수 밖에 없다.
엄마가 옆에 있어서 나는 엄마의 인생에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