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인간교육과 犬교육(라면을 끓이며 중-발1)

예똘 2015. 12. 15. 14:42

경북 영동의 소백산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진짜로 개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민주지산이 가까운 도마령 아래 산골마을의 포수 홍민표씨(36세)이다. 그는 사낭을 생계의 일부로 삼는 직업포수다. 그는 사냥 나갈 때 개 다섯 마리를 데리고 간다. 이 개는 빛나는 혈통을 자랑하는 사냥개가 아니다. 모두 그가 길들인 잡종견들이다. 그는 자신이 "개를 관리하기는 하지만, 개를 길들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개가 새끼를 낳으면, 이 새끼는 주인이 기르는 것이 아니라 어미가 기른다. 사냥하는 기술과 근성도 모두 어미개가 가르친다. 강아지 때부터 사냥 갈 때 데리고 나가면 이 강아지는 눈 덮인 산 속에서 어미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고 흉내내면서 저절로 사냥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제 어미한테서 사냥을 배운 개들이 사람한테 배운 개보다 훨씬 더 민첩하고 근성이 질기다"고 홍민표씨는 말했다.

  어미개 다섯 마리가 며칠씩 산속을 뒤져 멧돼지를 찾아내면, 멧돼지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포위하고 짖어대면서 총을 든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버틴다. 그때 멧돼지들은 개들을 향해 저돌성 공격을 감행하는데, 돌진하는 멧돼지에 받히면 개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있대 어미개들은 새끼들을 멀리 숨겨놓고 구경만 시킨다. 그러고 나서 멧돼지가 총에 맞아 쓰러진 다음에 어미개는 새끼들을 불러서 쓰러진 멧돼지를 물어뜯는 훈련을 시킨다.

  개들이 산속에서 오판을 해서 하루종일 헛고생을 할 때도 있다. 노루가 동쪽에 있는데 개들이 서쪽으로 가서 개 뒤를 따라가는 주인은 하루를 공치는 것이다. 홍씨는 그럴 때도 개를 나무라거나 때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개들을 때리면 때려도 말 안 듣는 개가 된다"고 그는 말했다. 더구나 새끼들이 보는 앞에서 어미개를 때리면 어미의 권위가 무너져서 새끼들을 사냥개로 길러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산속에서는 사람도 오판할 수가 있고 개도 오판할 수가 있으므로 서로의 오판을 긍정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포수가 꿩을 쏘면 개들은 사냥감을 향해 달려간다. 이때 꿩이 총에 맞지 않았으면 개들은 빈손으로 돌아온다. 빈손으로 돌아온 개들도 쓰다듬어주고 격려해야만, 명중되지 않는 총소리에도 달려나가는 개가 된다는 것이다. 개에게도 인륜이 있고, 포유류 공통의 정서와 행동원리가 있다. 이것은 견륜(犬倫)이라고 해야하는가. 그리고 개와 사람 사이에도 지켜야 할 신의와 염치와 범절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개를 마구 대하면 개도 사람을 마구 대한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 발1, 285-287)

 

  교육적이다. 감히 사냥개 교육과 인간의 교육을 비교하는가 하고 못마땅해 할 사람이 있겠지만. 그래도 교육적이다. 사람을 교육하는데 이 사냥개 교육 만큼도 못한 경우를 무수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새끼를 교육시킬 줄 아는 어미개와 어미개를 기다릴 줄 아는 포수. 마구 대하지 않는 교육자와 학생. 교육자(어미개)의 권위를 세울 줄 아는 사냥터.

  너그러움, 기다림, 신의, 염치, 범절. 지금은 사라지고 있는 생경스러운 단어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