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에로스(고미숙/그린비/2008)

머리말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공부는 '차이의 생성'이며 '존재와 세계에 대한 탐구' 이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랑과 성의 윤리적 배치
모든 세대가 '두려움 없는 사랑'을 꿈꿀 수 있기를
프롤로그
사랑할 때 꼭 기억애야 할 세 가지 테제
*테제1. : "사랑하는 대상이 바로 '나'다!"
애초 모든 사건이 자신으로부터 비롯했음. 사랑과 대상과 나 사이느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 나아가 사랑하는 대상,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테제2 : "실연은 행운이다!"
산다는 건 뭔가? 존재의 자유와 해방을 향한 여정이다. 어떤 사건들 때문에 헤어진다기보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 그런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테제3 : "에로스는 쿵푸다!"
"오직 배우는 마음만이 열정이 넘칩니다."
1부
오만과 편견, 사랑과 성(性,sex)에 대한
1. 대한민국은 연애 공화국이다? / 과거와 미래를 '왕복달리기' 하느라 현재를 살 능력도,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지혜와 능력이 부족한 탓
2. 지독한 이분법들
순정과 냉소. 순정이 과잉이라면 냉소는 과소다. 순정파는 사랑에 올인하는 만큼 일방통행이다. 냉소의 벡터는 자기안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절대 일정한 선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내면에 아무것도 없음을 내보이는 것이 두려워 완강하다. 그 두려움의 표현형식이 바로 냉소다. 이런 식의 이분법은 충동과 열정을 혼동하는 경향과 맞물려 있다.
충동이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래서 늘 중독적 상태로 치닫는 힘이다. 나에게 엄청난 쾌락을 주긴 하지만, 그 원인은 늘 외부에 있어 강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나는 노예적으로 끄달리게 된다.
열정은 삶의 의지와 연동되어 있다. 절대 중독되지 않는다. '유래 없는 평온'을 선사한다. 사랑에서 가정 중요한 것은 시절인연이다. 대상이 누구내보다 언제 어디서 만났느내가 더 결정적이다.'시공간적 배치' 속에서 사랑이라는 특별한 감정이 생긴다.
누군가 먼저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일단 둘의 인생행로에 커다란 '시공간적 격차'가 생겼다는 걸 의미한다.
어리석음과 무능력은 폭력과 짝한다. 그런 상대한테 꽂힌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심각하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감정이 생겨난 주변조건 및 그 흐름과 궤적에 대해 살펴야 한다.
3. 불멸의 판타지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 결과에 대한 대가성을 바라고 한다면, 딱 그만캄 잉여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잉여는 만병의 근원이 된다.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다 버렸으면 아무것도 바라서는 안 된다. 뭔가를 바라는 순간, 그건 이미 희생이 아니라, 교환이자 거래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랑은 갈등이 없는 것이라는 착각도 희맹이라는 미덕과 연계되어 있다. 참는 건 참는 것일 뿐이다. 참고 견딘다는 건 속에다 꾹꾹 늘러 담는 것이지 상대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동정과 연민만큼 인간을 나약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희생이라는 포장 속에 어슬픈 평화를 누리기보다 솔직하게 서로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화끈하게 전투를 벌이는 것이 사랑의 본래 면복에 더 가깝다. 희생과 헌신이라는 미덕만큼 사랑과 거리가 먼 항목도 없다.
추억과 몽상. 지름 현재를 과거로 만들기 위해, 고거 속에 구겨넣고 되새심질하기 위해 제물로 바치다니 그 과거는 현재를 지우고 마침내 미래까지 지배해 버린다. 지금 여기의 사랑을 누려야 한다.
4. 사랑엔 공부가 필요없다?
공부는 근본적으로 몸과 우주에 대한 탐구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의 내부는 비어간다. 결국 연애를 하면 할수록 몸으로부터의 소외가 일어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는셈!
선수들을 위한 매뉴얼 아니면 순정파들의 오래된 관습. 이것의 범람은 첫째, 현대인의 자신의 마음의 행로에 대해 실로 무지하다는 것, 둘째 그 무지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 셋째 그것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 뭔가에 의존해서 타개하고 싶어한다는 것. 핵심은 분석과 통찰이 아니라 연민과 위안이다. 동정과 연민은 전혀 다른 삶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다만 순간적인 안정감을 줄 뿐! 그러니 상처가 가라앉으면 또다시 똑같은 방식의 실패를 반복할수 밖에.
이 오묘한 착각의 연쇄 고리들!
유치한 게 사랑과 인생에 도움이 된 적은 단 한건도 없었다!
"사랑, 노동, 지식은 우리 생활의 원천이며, 이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
5. 사랑, 삶을 망각하다! - 권태 아니면 변태
연애가 삶을 집어 삼키는 형국. 시공간적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일상의 배치다. 배경이 없으면 어떤 존재도 빛을 발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맹복적일수록, 다른 관계와 단절될수록 강렬하다는 믿음이 여전하다.
2부. 청춘의 '덫' 국가와 학교, 그리고 쇼핑몰
옥망이란 고유한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배치의 산물이다. 시대에 따라 욕망을 특정한 한 방향으로 조직하고 유도하는 '사회적 배치'가 존재한다.
1. 20세기와 욕망의 배치
근대권력은 인구 전체를 촘촘하게 통제,관리하는 일종의 생체 권력이다. 인구가 곧 생산력이하는 계산하에서다. 에로스불감증과 신자유주의의 '경쟁력 지상주의'와 무관한 것일까?
2. 집과 학교 - 시설 좋~은 '감옥'
가족, 치명적인 유혹. 어린이는 어린이 나름의 힘과 능력으로 타인과 세상을 얼마든지 배려할 수 있다. 누구나 그 자리에서 행복해야 한다. 누구나 그 자리에서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사랑을 나눌 수 없을 만큼 나약한 존재도 없고, 사랑이 필요없을 만큼 강한 존재 또한 없다!
엄마의 늪. 가족 경제의 척도를 뛰어넘은 공적 윤리과 비전을 갖고 있어야 비로소 공론장이라 이름할 수 있다. 연애는 드라마로, 섹스는 포르노로 배운다.
3. 쇼핑몰, 욕망을 집어 삼키다.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가 목적이다.
"젊음이란 20대 청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연령에 걸맞는 청춘을 매번 새롭게 '창조하느' 것이다."(들뢰즈) 학문을 미리 닦고 미덕을 실천하며 미망을 놓아 버리는 법을 훈련하는 이들에게는 늙어감이야말로 지복이다.(채운)
쇼핑몰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저 엄청난 '빛의 폭주'를 보라.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불빛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행복도 선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불빛이 구사하는 현란한 '쇼'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입하면서.
"환멸의 비애란 허(虛)가 허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허를 실(實)로 오판한데서 일어난다.(루쉰)
죽음 앞에서 모든 고정된 것은 다만 연기처럼 사라진다.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4. 청년 문화가 없다.
간신음허(肝腎陰虛). 축축하고 텅 비었다는 뜻이다. 담력과 창의력이 심각하게 결핍될 수 밖에 없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끈기나 열정이 부족하게 된다.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다른 궤적을 밟고자 하는 모험심 모두 후달리게 마련이다.인터텟 안에선 '조증'에 가까운 활동력을 보이지만, 몸으로 부팆혀야 하는 바깥 세계에선 거의 자폐증에 가까운 형태를 보인다.
옥망이란 관계의 산물이다. 닫힌 공간에선 사랑조차 닫혀 버린다. 사랑이 닫히면 삶을 바꾸는 혁명적 파토스 또한 침묵, 봉쇄된다. 에로스란 원초적 본능이자 욕망의 흐름 자체이다. 어떤 종류의 관계든, 어떤 활동 영역이든 존재의 자유와 충만감이 분출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에로스다. 기성세대를 떨게 만드는 '아방가르드'
3부. 청춘이여, 욕망하라!
1.몸은 답을 알고 있다.
'우주와 통하는 건 몸뿐이다!"(정화 스님)
작업 끝. 선수는 가라! 어떤 유형의 연애건 그것이 '작업'이 되는 순간, 사랑과 성은 그 열정과 패기를 소거당한 채 상품의 루트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몸의 고유한 리듬을 억압하고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외부세계가 나한테 개입하는 것이 '신', 내가 외부세계를 향해 쓰는 기운이 '기',라고 할 때, 기와 신이 마주치는 교집합만큼 정이 형성된다. 존재와 외부의 상응. 딱 그만큼이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어너지, 곧 정이다. 기운이 온통 외부를 향해 치달으면 내 안에 정이 쌓일 여지가 없어진다. 정이 부족하면 제일 많이 생기는 것이 공포심이다. 이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수단이 쾌락 아니면 냉소다.
지금 사람들이 추구하는 외모. 이런 몸은 기운이 상체로 치달아 하체가 '붕 떠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건의 중심에 진입하기 어렵다. 몸과 사건이 따로 놀기 때문에 관계를 만드는 데있어 도무지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늘 외로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외로움과 공포.
사랑이란 무엇보다 무리 속에서 어떤 특이성이 발견될 때 시작되는 것이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남녀들이 유사한 매뉴얼로 좌충우돌 해봤자 남는 건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뿐이다. 인연의 형성 자체가 자신의 몸이 불러오는 것임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존재는 엄청난 변이를 경험하게 된다. 그 열기는 자아를 송두리째 뒤엎을 정도로 강력하다.존재가 뒤바뀌는 체험을 하려면 폭풍 자체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폭풍이 내 몸의 세포조성을 전면걱으로 재배치할 수 있도록 몸을 맡겨야 한다.기존의 나로부터 떠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ㄴ의 세계관과 습속의 배치를 바꾸어 준다면, 그것은 폭풍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강하게 불어닥친다 한들 그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변덕)에 불과하다.
사랑이 시작되면, 신체는 강력한 생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그런데 그것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가 일어난다. 이런 오독의 핵심은 사회적 망상들이다. 신체적 감응이 아니라 망상 속의 이미지만을 교호했기 때문이다. 사랑할수록 소외가 심화되는 역설이 일어난다. 가장 먼저 자신의 몸과 정직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상대를 유형화해서는 끊임없이 편법만 나온다. 자신을 우형화 해야 한다. 상대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외모와 몸매말고는 자신의 신체에 전적으로 무관심하다는 것은 오직 타인의 시선을 위해서 존재하는 몽이라고나 랗까. 몸, 마음, 몸매, 건강. 한마디로 몸을 갈기갈기 해체해 놓고 있는 셈이다. 사랑 자체가 망상의 산물이다보니 그 망상을 쫓아가노라면 간극이 더더욱 벌어지고 그러자니 몸이 참으로 고달프기 그지 없다. 열쇠는 관찰하는 연애다. 그 관찰의 열쇠는 다름 아닌 몸이다.
성은 에너지 전환 작용의 필수불가결한 한 부분으로 오직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 삶의 희열을 만끽할 수 있고, 에너지에 침잠된 이 우주 속에서 그 자신을 유지할 수 있으며, 또 자신의 복잡성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기술에는 성적 욕망에 대한 지혜와 통찰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양생이란 내 몸의 생기를 최대한 확장하는 것
양생은 근본적으로 몸과 외부의 상응적 관계에서 출발한다. 몸이 외부와 어떻게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 있다. 몸은 본래적으로 안팎이 열려 있고, 따라서 관계를 떠나 홀로 고립된 몸은 존재할 수 없다. 결정권은 전적으로 자기에게 달령;ㅆ다. 자신의 몸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왜? 몸은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생술은 이치로는 '몸과 우주 사이의 비전 탐구', 구체적인 행동지침으론 '정을 보존하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저녁에 배불리 먹지 말 것이뎌, 그믐께 몹시 취하지 말것이며 겨울에 먼 길을 걷지 말 것이며, 밤에 불을 켠채 성교하지 말 것이다.
2. 실연은 없다!
사랑은 대상이 나를 선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어가는 시공간적 인연의 장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연은 없다. 생명이 그 자체로 기쁨인 것처럼.
나에게 기쁨을 주는 만큼,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만큼, 내가 끌리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랑은 이미 사랑을 하는 그 순간에 충분히 보상을 받는 셈이다. 생명이 죽음으로써 정의되듯이 사랑 또한 이별로써 정의된다고 할 수 있겠다.
결별로 인해 고통을 받을 때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고통은 휴식이 될 수 있다. 질병이 오는 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다. 결별 또한 그렇다. 충격과 아픔을 수반하는 건 틀림없지만,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삶을 유지하는 최선책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렇게 해서 나를 버리고 떠난 이들에게 진정 감사하는 순간이 도래할 것이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나 자신이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아! 그런 인연의 장을 만든 자시 자신을, 자신을 얽어매는 온갖 망상들을, 그리고 나서 고개를 돌리고 성큼! 길을 나서라.
사랑이 삶을 고양시키기는 커녕 존재의 능력을 떨어뜨리게 된다면, 그건 무조건 실패다.
열명한테 받는다 한들 자시가 한 번 제대로 하는 것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하다. 소유의 판타지, 자의식의 망상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짝사랑만큼 행운도 없다.
탐진치.대상을 맹렬하게 욕망하고(탐), 그것이 뜻대로 안되면 분노의 화염에 휘말리고(진), 그 다음엔 앞이 깜깜해지는 무명의 늪(치) 간신히 그 늪을 벗어난 다음엔 다시 똑같은 틀을 반복한다. 탐진치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을 하는 길은 발원하는 것이다. 발원은 자기로부터 벗어나 더 큰 인연의 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모든 에너지를 가장 중요한 한 점에 집중해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어떤 조선이나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수행하면 어느 시점엔가 이 움짓이지 않는 마음은 엄청나게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지금 있는 것, 나에게 굴러 오는 건 내 복이고, 뭔가 안좋은 일이 생기면 그건 나므이 탓이거나 운수 탓인 것처럼 생각한다. 참 희안한 계산법 아닌가.
"쿨하다"는 건 "스스로 얼어 죽는다" 는 뜻이기도 하다.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아주 낯선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진정한 결실이다. 그러니 간절히 발원하라 그리고 때를 기다리라.
3. 화폐 권력에 저항하라
법이고 나발이고 내가 싫으면 그만이다. 내 몸의 주인은 나다.
감성과 지성, 슬픔과 분노 등, 아주 다르게 보이는 정서적 지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것, 그게 바로 에로스의 변이 능력이다. 이 변이가 가능하려면 지배적인 가치로부터 탈주해야 한다. 탈주와 변이는 함께 간다. 상랑이란 원초적으로 탈주선이다.탈주선이 되려면 무엇보다 욕망의 차이가 생성되어야 한다. 화폐 권력이 쳐 놓은 금지의 선을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매트리스로 들어사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진짜 소중한 선물에는 삶이 묻어있어야 한다. 나의 일상의 리듬과무관한 선물이란 그야말로 쇼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사랑이 지닌바 특이성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는 사랑법을 창안하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사랑법을. 존재 자체가 이미 서로에게 선물인데 뭘 더 선물한단 말인가?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소유하는 것으로 등치되어 비린다. 그리고 소유는 곧 지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낟.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집착으로 빠져 버린다. 사랑이 '흐름이요 운동'인데 비해 집착은 흐름을 멈추게 하고 한곳에 가두어 버리는 기제이기 때문이다.
근대 초기에는 일부일처제야말로 신의 소명이자 최고의 문명적 가치로 받아들여졌다. 성적 욕망이 모조리 가정으로 흡수되면서, 가정이 국가으 ㅣ기초다누이가 됐기 때문이다. 사랑과 재산권, 사랑과 소유느 완별하게 오버랩되고 말았다. 더 많은 재산, 더 많은 쾌락을 소유하고자 하는 옥망, 이것을 우리 시대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궁극적으로 사랑과 소유를 혼동하는 인식론젓 습속과 맞서 싸워야 한다.
4. 사랑하는 순간부터 책을 읽어라
에로스는 쿵푸다.
앎의 크기만큼 사랑의 열정도 자라게 되어있다. 사랑하게 되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되는 법. 즉 아느 만큼 사랑한다.
철학을 하면 표정과 걸음걸이부터 달라진다. 화폐권력과 싸워 나가는 힘도, 소유와 죽음 충동에 맞설 수 있는 저력도 앎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상의 관습과 척도에 대한 공부가 없이 이 무지막지한 망상의 포위망을 어찌 뚫고 나갈 수 있으랴. 사랑이 '죽임'이 아니라 '살림'이 될 수 있는 배치, 그것은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세상을 멋지게 사는 법 중에 공부보다 더 화끈한 건 없다는 것. 또 연애를 멋지게 하는 법중에 함께 책을 읽고 뭔가를 배우는 것보다 더 기막힌 건 없다는 것. '사랑은 가도 수학은 남느 법' 이니.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는 전령사다. 마주치는 순간, 전혀 다른 매트릭스. 아주 이질적인 우주가 눈앞에 펼쳐지느 것. 그것이 곧 책이다.
가장 좋은 건 늘 누군가와 세미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란 본래적으로 네트워킹이다. 홀로 서재에서 끙끙거리며 남을 지배하기 위해 하는 건 경쟁을 위한 도구지 절대 공부가 아니다. 공부를 한다는 건 무조선 친구들과 함께 세미나를 한다는 뜻이다.
이별이 온 다음에도 삶은 계속된다. 만약 드동안 둘만의 관계가 전부였다면, 이별은 엄청난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존재를 위험에 빠뜨리는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주변에 든든한 배경이 있다면, 아무리 엄청난 결별을 경험했다하더라도 그 림에 의지하여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공부는 세대롸 직업, 성별을 넘어 서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승부처다. 사랑을 하고 싶은가? 혹은 지금의 사랑을 더 지속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책을 읽어라! 공부를 하고 세미나를 조직하라.
4부 에로스와 '운명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