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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명혜(김소연/창비) ; 명혜와 오싱의 차이

 


본래 아이들 책은 잘 보지 않습니다.
뻔한 감동에 뻔한 웃음에 뻔한 결말들이..
읽어봐야 뻔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고
더구나 비루하고 천박한, 그러면서도 이중적인 세상을 아는 나이인 만큼
순수한 아이들의 눈높이로 지은 책들이 재미있을리도 없지요.
머털도사나 윤승운의 조선왕조오백년 정도의 만화라면 시간도 죽일겸 가끔은 봅니다만..

이 책은 서점 한 쪽 구석에 앉아 "창비"에서 나온 책이기에 시간 죽이기 삼아 뒤적거리다가
급기야 구매까지 하게된 책입니다.
흔한 장래희망한번 변변하게 가져보지 못하고 사춘기를 보낸 나로서는
주인공 명혜의 똑부러진 인생 결정이 소설 속의 이야기지만 부럽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장래 희망한번 가지지 않았고
사춘기에 부모님께 말대꾸한번 하지 않았고
20대에는 여행 한 번 다녀보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
큰 걸림돌이 된 것을 안 지금,
지금이라도 스스로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힘이 좀 드네요. 추진력이나 속도도 줄고 말이죠.
 이책의 주인공은 사춘기를 시작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내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인습과 풍속과 대세에 대항하여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

조혼 풍습을 피하여 서울의 여학교에 입학하고
순수한 피가 이끄는대로 독립 운동에 참여하고
그리고 뜻 하나만 품고 유학을 갑니다.
그것도 오빠의 죽음을 뒤로하고 말이죠.

왜 오싱과 비교하는가 - 하면 말이죠
누군가가 묻더군요.
오싱은 주인공이 불행해서 읽기 싫다면서 왜 명혜는 읽느냐구요...?

글쎄,,,
한참 대답이 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더군요.
명혜도 오빠를 눈앞에서, 그것도 총에 맞아 죽어가는 것을 억지로 끌고 집으로 와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떵떵거리던 집안의 몰락도 지켜보았습니다.
오싱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든가 하는 극한의 불행은 없었는데
오싱은 책표지조차 보기 싫더란 말입니다.
오늘 그 대답을 찾았습니다.
명혜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찾아 당찬 노력을 계속하여
인생을 개척해 가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오싱은 주어지는 불행을 그저 자신의 몫이려니 여기고 그 불행을 꿀꺽 삼켜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명혜는 운명의 물살을 가르며 전진하는 사람이고
오싱은 운명의 물흐름에 자신을 던져놓고 그 흐름 따라 떠도는 사람입니다.
명혜는 목적지가 있고
오싱은 목적지가 없습니다. 자신도 어디로 갈 지 모릅니다.
명혜는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사람이고
오싱은 부정적이지도 않으면서 수동적인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명혜는 자신의 미래를 그릴 수 있으나
오싱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명혜를 좋아할 수 밖에요.
이 책은 김소연의 첫 장편 동화입니다.
그림은 장호가 그렸습니다.
창비아동문고 233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 순사에게 도둑 누명을 쓰고도 당당히 호령하며 꾸짖던 모습이
부유한 양반가의 규수이기에 가능하다는 책 속의 설명에는 씁쓸함이 있습니다.
물론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어딜가나 당당하겠지요.
반면에 가난하고 병고에 시달리며 무식하기까지 한 무지랭이들은 어딜가나 기가 죽겠지요.
하지만 꼭 그것을 '창비' 책에서까지 기정사실화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세상은 이미 충분히 가진 자들의 것인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