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클라크 지음
박철홍 옮김
김영사
2006
1판 5쇄
308쪽
용기를 가져본다. 그냥 한 번 해 보자 - 라고!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하다보면 끝없이 유치해지는 나를 발견하고 초등 교사로 사는 삶에 회의를 느끼는 때가 많았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단어는 “생활”과 “유치하다”이다. 유치하다는 것은 단어 자체가 풍기는 뉘앙스대로, 천진한 혹은 순수한 동심의 세상에서 살기 등의 긍정적인 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값 못하고 살아야 하는 초등 교사의 운명같은 삶의 색깔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활. 어느 직장도 근무하다라는 말 대신에 생활하다는 말을 붙이지는 않는다. 같은 교직에 종사하는 중등 교사도 아이들과 생활한다는 말을 쓰기에는 어색하다. 초등 교사는 아침에 출근해서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갈 동안 항상 아이들과, 그야말로 “생활”을 같이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렇지만 “생활”은 나에게, 교실에서는 나이 값을 못하고 교실 밖에 나오면 나의 잔소리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든 ‘사회 생활’을 하며 내가 선생인 것을 가끔은 저주하는 이중 생활인으로 살도록 만든다. (난 학생이 볼까 두려워 사소한 규칙도 어기지를 못한다. 순전히 누가 볼까 두려워서이다.)
“유치하다”는 모두 교사인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나의 유치한 생활은 어떤 것인지 내가 아이들에게 지키라고 강요하는 규칙을 통해 살펴보자. 저학년과 고학년의 차이는 있으나 여기서는 구분없이 쓰겠다.
1.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꼭 다녀오기 : 강조하지 않으면 일년 내내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아이들로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횟수는 줄 뿐 없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너, 화장실 다녀왔어?, 오줌누고 왔니? 왜 화장실 안가? 빨리 갔다와!”를 반복해야 한다. 그것도 매일.
2. 우리 반 실내화는 계절구분 없이 흰색 실내화 : 아이들은 여름이면 슬리퍼를 겨울이면 털신을 실내화로 신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슬리퍼는 계단을 내려갈 때 위험할 뿐만 아니라 걸음걸이를 산만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수업까지 산만하게 만든다. 털신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아이 머리통만한 털신도 많다. 이것 또한 생활을 산만하게 만든다. 또한 금지한다. 계절이 바뀌면 잔소리 시작이다.
3. 똑바로 앉자. : 5분도 가만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기인열전에서나 봄직한 자세로 앉아 수업을 한다. 척추를 휘게 한다. 이런 아이들은 오래 집중할 수도 없다. 잔소리는 계속된다.
4. 준비물은 전날에 준비하자. 아침에 문구점에 들르지 말자. : 학교에 돈 들고 오지마라. 그 돈은 내 돈이다. 모았다가 연말에 불우이웃 돕기에 쓴다고 협박한다. 실제로 그리한다.
5. 목소리 낮추자. : 산만한 아이들일수록 목소리가 크다. 쉬는 시간 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도 교실이 떠나간다. 이럴 땐 나도 침묵의 잔소리를 시작한다. 나를 볼 때까지 쳐다보며(사실은 째려보며) 입술위에 손을 얹고 쉿!
6. 기타 : 기타라고 비중이 작은 것은 아니다. 잔소리는 계속된다. 네가 만든 쓰레기는 네가 처리해라. 남의 잘못을 찾지 말고 나만 잘하면 된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 불장난, 각종 폭력은 선생님께 작은 것이라도 말하기. 그러나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하라, 샤프 쓰지 말고 연필로 써라, 공책 정리 잘 해라, 등. 이외에도 엄청니게 많다.
아이들이 지켜야 하는 내용은 많고 나의 잔소리는 늘어간다. 수업 시간 뿐만 아니라고 교실에서도 쉬는 시간 복도에서도 심지어는 남자 화장실까지 따라간다. 초등학생이라서 그렇다. 같은 잔소리를 눈짓으로 표정으로 말로 행동으로 하루에 서른 번 이상은 해야 한다. 그것은 일년 동안 반복되고 나는 20년을 잔소리 해오고 있다. 나의 잔소리에 나도 지친다. 끝까지 따라가서 응징하고야 끝을 내는 유치함까지 나를 지치게 만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든가! 학부모와 교장들과 나아가 이 사회는 나에게 아이들을 칭찬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우리 아이는요 윽박지르거나 혼내면 안돼요. 대신 칭찬하거나 살살 구슬리면 말을 잘 듣거든요. 칭찬 많이 해 주세요.’(학부모), ‘칭찬 받은 아이는 표정부터 달라집니다. 칭찬을 많이 해 주는 교사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잘못 했다는 지적보다는 칭찬을 많이 합시다.’(교장 혹은 장학사), 매스컴은 잊을만하면 한줌정도 되는 초등학생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와 밝고 생기 넘치는 아이들에 둘러싸인, 꾸중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 같은 해맑고 젊은(그렇다! 그런 선생님들은 대부분 젊더라.) 교사들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아이들은 일정기간 칭찬보다는 잔소리를 먹고 어느 정도 자라야 칭찬이 통하는 것 같다. (사실 내가 만난 아이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무엇인가 시킬 목적으로 칭찬을 남발하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지 않느가!) 하여튼 나는 현실과 괴리된 환경과 나의 교실 풍경 사이에서 적잖이 괴로워했는데 이 책을 읽고 조금 위안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도 학생들에게 사소한 규칙들을 강요한다. 실제로 초등학생을 가르쳐본 사람들은 그런 규칙들이 교실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노력과 인고는 길고 결실과 행복은 순간이다. 하지만 이 순간적인 행복을 위해 인간은 오랫동안 노력한다. 나의 잔소리도 그렇다. 지루한 장마처럼 계속되는 잔소리 끝에 어느 순간 햇살 같은 칭찬을 듣고 맑아지는 아이들을 보는 행복은 순간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위해 나는 가르치는 일을 계속한다.
2009학년도 나의 아이들은(한 명 빼고) 정말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아이들은 처음이었다. 하나를 던지면 열심히 노력해서 열 가지의 성과를 담아온다. 열성적이고 진지하고 솔직하고 아이다운 장난기까지 갖춘(나는 아이들의 장난기를 사랑한다. 그들만의 보석이기 때문이다.) 나의 5학년 2반 아이들. 지루한 잔소리는 진지하게 들을 줄 알고 그들의 열 가지 성과를 보고 지은 나의 기쁜 표정과 만족한 한 마디 칭찬에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자의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아이들. 하지만 그들을 위해 나는 아무런 선물을 하지 않았다. 요구하기만 했지 평소 해오던 것 이상의 노력은 기울이지 하지 않았다. 내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실패하면 어떻하지?’, ‘동료 교사들이 비난하지는 않을까?’, ‘내가 그 정도 능력은 없잖아!’
용기를 가져본다. 그냥 한 번 해 보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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