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있는 스터디.
준비물이 없다는 이창준 선생님의 말을, 책을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잘 못 해석한 탓에 빈손으로 탈래탈래 간 덕분에 지난 스터디에서는 의도치 않게 꿀먹은 벙어리 노릇을 했다. 오늘은 비교적 시간도 나고 해서 1,2,3장을 읽었다. 원래 6장까지였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3장까지만 읽었다. 다행히 진도도 3장까지만 나갔다.
나는 그동안 듀이에 대해서 그리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가벼운 경험 나부랭이, 일상을 표본으로 한 자잘한 경험 따위로 교육을 대체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 2장을 읽은 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어찌보면 사회학 책으로 오해하기도 쉬운 이 책의 내용을 교육 철학의 논조를 잃어버리지 않고 읽어가다보면 거대한 원칙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 가장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환경'과 '분위기'이다.
듀이는, 환경을 개인 자신의 능동적인 경향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 사물 사이의 특수적인 연속성으로 보고(민주주의와 교육 p52)있다. 어찌보면(교수님의 해석대로) 환경을 어떤 의미로는 소멸하고 성장하고 활동하는 일종의 유기체로 보고 서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을 환경으로 정의하고 나머지 것들은 모두 환경이 아닌 물리적 조건으로 보고 의미를 두지 않는다. 듀이는 또, 우리의 관찰력, 기억력, 상상력은 저 혼자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목하 진행되는 사회적 활동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작용하는 것이고 성향의 결은 학교교육과는 관계 없이, 그러한 사회적 영향에 의하여 형성된다. 의식적, 의도적인 교육이 할 수 있는 일을 기껏해야 그렇게 형성된 능력을 자유롭게 신장시켜 더 충분히 발휘 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몇군데 더 조잡한 부분을 잘 가다듬는 것, 그리고 그 능력을 행사함으로써 더 큰 의미가 창출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상을 제공하는 것 뿐이다. (같은 책 p60) 듀이는 학교 교육의 영향과 역할을 미미하게 보고 있다. 아니 큰 비중을 두더라도 그것은 사회의 범주에 포함된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교육기관으로 국한시킨다. 듀이에 의하면 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 점은 나도 공감한다. 현재 사회는 교육이 져야할 책임의 대부분을 학교에 떠넘기고 있다. 학교는 또 그렇게 떠맡은 책임을 자신들의 권리로 변신시켜 기득권을 주장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학교가 큰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계가 있다. 가장 교육적이려면 학생들이 호흡하는 사회의 공기를 교육적으로 환기해야 한다. 왠지 모르게 야릇한 냄새가 나고 공포심과 두려운 기분을 조장하는 것들은 교육적이지 못하다. 이것에 전제되어야 학교에서 시행하는 일련의 이벤트들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존 듀이를 제대로 읽지 않고 듀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면밀히 읽어보면 노작중심의 경험론자도 아니고 근본주의자도 아니다. 듀이는 보통의 사고를 하고 보통의 생활을 교육 속에 끌어들인 보편적인 논리와 주장을 펴는 철학자이다. 다만 위대한 점은 그 보편적인 사고 전개를 그 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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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 선생님은 이야기를 할 때 '그러니까'를 정말 많이 사용한다. 두마디 걸러 한 번식 '그러니까' 한다.
난, .... 어쨌건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박경순 선생님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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